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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 정자문화의 보고 '함양 화림동계곡'

조회 : 1,454 다볕지기
영남 정자문화의 보고 '함양 화림동계곡'
묵향의 꽃이 핀 선비의 고장

담양이 호남 정자문화의 메카라면 함양은 영남 정자문화의 보고다. 
소쇄원·식영정·송강정 등 담양의 정자들이 가사문학을 잉태한 산실이라면 함양의 정자들은 선비들이 시서(詩書)를 논하던 경연장이자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으로 불릴 만큼 일찌감치 묵향의 꽃이 핀 선비의 고장이었다. 이런 연유로 정자문화가 발달했다. 물 맑고 호젓한 계곡 옆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함양 정자문화의 진면목을 만나려면 화림동계곡으로 가야 한다. 계곡에 걸터앉은 정자가 한폭의 수채화를 연출하는 화림동계곡에서는 옛 선비의 풍류를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원한 계곡물로 무더위도 달랠 수 있다.

◆화림동계곡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기암괴석 사이를 굽이굽이 돌며 작은 못을 만드는 화림동계곡에는 8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거연정·군자정·동호정의 모습만 볼 수 있다. 농월정도 남아 있었지만 아쉽게도 2003년 화재로 소실됐다. 고색 창연한 이들 정자 사이사이 자리잡은 람천정·경모정·영귀정은 모두 최근에 지어진 정자들이다.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화림동계곡에 접어들면 농월정국민관광지가 나온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농월정이 있었던 곳이다. ‘달빛을 희롱한다’는 농월정(弄月亭)은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정계에서 은퇴한 뒤 지었다고 전해진다. 농월정은 달바위로 불리는 너른 반석 위에 세워진 2층 누각으로 주변 풍광이 시원하고 호쾌해 화림동계곡을 대표하는 자랑거리였다. 농월정이 떠난 국민관광지에는 식당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주인 없는 자리 객들만 지키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감정이 든다.

농월정국민관광지에서 3㎞ 정도 올라가면 계곡을 굽어보며 당당하게 서 있는 동호정(경남 문화재자료 제381호)이 모습을 드러낸다. 동호정(東湖亭)은 임진왜란 때 선조의 의주 몽진을 도와 공을 세운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890년 건립한 정자로 남아 있는 화림동계곡 정자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누에 오르려면 나무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생김새가 이채롭다. 통나무 2개를 잇대어 비스듬히 세운 뒤 도끼로 내리쳐 홈을 파 만든 까닭에 자연미가 한껏 살아 있다. 동호정 앞에 있는 너럭바위 차일암(遮日岩)도 눈길을 끈다. 장정 수백 명이 족히 앉을 수 있을 만한 크기(길이 60m, 폭 40m)를 자랑한다. 차일암에는 금적암(琴笛岩), 영가대(詠歌臺)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 과거 음주가무 무대로서 사랑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동호정을 뒤로 하고 1㎞ 정도 길을 재촉하면 군자정(君子亭)과 거연정(居然亭)이 잇따라 나타난다. 군자정과 거연정은 봉전교를 사이에 두고 50여m 간격으로 떨어져 있다. 군자정(경남 문화재자료 제380호)은 커다란 돌 위에 사뿐히 얹혀 있다. 소박하고 조촐하지만 기품은 살아 있다. 정선 전씨 입향조인 화림재 전시서 공의 5대손인 전세걸이 조선 성종 때 대학자인 정여창을 기리기 위해 1802년 지었다. 정여창이 찾아와 시를 읊었던 곳에 정자를 세운 뒤 군자(정여창)가 머무르던 곳이라 하여 군자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주위에 커다란 음식점이 있어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이 흠이다.

거연정(경남 유형문화재 제433호)은 화림재 전시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7대손인 전재학·전민진 등이 1872년 건립했다. 동호정·군자정이 계곡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거연정은 계곡 중간 바위 위에 걸처져 있다. 거연정이 놓인 자리는 바닥이 고르지 않고 들쭉날쭉한 바위로 되어 있지만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맞추어가며 주초석을 놓고 건물을 올렸다.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건축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화림교라는 철재 구름다리가 놓여 있어 계곡을 건너 거연정에 오르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함양의 정자들은 배타적이지 않다.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올라가지 마시오’라고 팻말이 붙어있지 않아 누구나 정자에 올라 선비처럼 쉬어갈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정감이 간다.

◆선비문화탐방로

영귀정~다곡마을~호성마을~경모정~람천정을 거쳐 황암사까지 이르는 5.8㎞ 길로 3년 전 조성됐다. 군자정에서 봉전교를 건너면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 왼쪽에 있는 나무데크가 선비문화탐방로 출발점이다. 길이 평탄한데다 수려한 화림동계곡을 굽어보며 걸을 수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거연정휴게소에 차를 세워 두고 도보여행을 한 후 황암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데 버스 시간이 들쭉날쭉해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운이 좋으면 30분 안에 버스를 탈 수 있지만 시간대를 못 맞추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가는 길:대구~88고속도로~거창 IC~24번 국도 거창 방면 우회전~로터리에서 좌회전~무주·함양 이정표를 보고 24번 국도를 따라가다 26번 국도 장계·서상 IC 방면으로 우회전하면 화림동계곡이다.

글·사진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