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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떠나자!-정자와 풍류의 경남 함양 화림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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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아이즈]자, 떠나자!-정자와 풍류의 경남 함양 화림동 계곡



【함양=뉴시스】노상봉 기자 = 용광로 같이 대지를 달구던 태양이 마지막 열기를 토하며 여름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기세 좋던 더위가 절정을 지나 서서히 고개를 숙이는데도 아직 휴가를 떠나지 못한, 또는 갈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 심신과 오감 모두 만족을 얻을 수 있는 풍류와 선비의 길, 경남 함양군 화림동 계곡을 소개한다. 

함양군은 물 좋고 산 좋은 곳마다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 국내 최대 정자문화의 메카다. 특히 화림동 계곡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자들이 청주 같은 계곡물과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과시하고 있는 곳이다. 

화림동의 그 많은 정자들은 조선조 선비들이 아름다운 계곡의 물과 숲, 꽃과 나무와 교유하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계곡에 남은 정자는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 세 곳뿐이다.

농월정은 지난 2003년 전소돼 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루 빨리 재건되길 기대하고 있다.

◇농월정=안의면에서 전북 장수군으로 통하는 국도 26호선을 따라 약 4㎞를 가면 굽이치는 물가에 백옥 같은 너럭바위가 하늘과 배를 맞대고 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이 화림동의 최고 정자인 농월정이 있던 곳이다. 

예부터 화림동을 정자문화의 보고라고 하는 것은 이곳의 정자들이 실로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농월정을 제외한 3개의 고풍스런 정자가 남아 있고, 특히 농월정은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뜻으로, 옛날 우리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들어 함양을 찾는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거쳐 간 곳이다.

맑은 물이 급한 굴곡을 이루는 곳에 커다란 반석이 펼쳐져 있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월연암이라 이름 붙은 너럭바위 위로 미끄럼 타듯 물살이 세차게 흐르고, 물길 따라 골이 깊게 패여 있다. 월연의 맑은 물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개구쟁이들의 모습과 아름다운 풍경은 한 폭의 동양화가 돼 지나는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해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시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이다.

농월정 정자는 후세 사람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정자인데 우리 조상들의 풍류에 대한 면모를 짐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호정=동호정(東湖亭)은 거친듯하면서 활달한 이미지의 정자로, 화림동 계곡을 대표하는 두 정자인 농월정과 거연정의 중간에 있다. 1890년 건립돼 그리 오래된 편은 아니다. 

동호정의 개성은 기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말린 통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비틀어진 흔적과 나무옹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2층 정자로 오르는 계단 역시 통나무에 도끼질 몇 번으로 요철을 만들어 그대로 계단으로 기대어 놓았다. 정자를 만든 사람의 여유와 배포가 그대로 전해져 보는 이로 하여금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동호정 바로 앞에는 화림동 계곡에서도 너럭바위로 유명한 차일암(遮日巖)이 있다. 차일암은 넓은 반석으로 200~300명은 족히 앉아서 쉴 수 있는 크기이다. 동호정에 오르거나 차일암에 앉아 주변을 감고 도는 화림동 계곡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다. 

◇군자정=군자정(君子亭)은 화림동 계곡의 거연정에서 물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면 보인다. 남아 있는 정자 세 곳 중에서 가장 낡았지만 건축물 자체의 비례로는 가장 예쁜 정자다.

군자정은 조선 5현이라고 알려진 일두 정여창 선생과 연관이 있다.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바로 이 정자가 있는 봉전마을이었다. 그가 처가에 머무를 때 자주 들렀던 곳에 전씨 문중의 전세걸 진사 등이 1802년에 선생을 기리면서 정자를 세운 것이다. 

해동군자가 쉬던 곳이라 해서 이름을 군자정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정자 아래 계곡에 집채만한 바위 등의 볼거리가 있으며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수량이 많아 그 또한 볼 만하다. 


◇거연정=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全時敍)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인 현 거연정 위치에 억새로 만든 정자를 최초로 건립했다.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됐다.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전재학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했으며 1901년 중수가 있었다. 

거연정은 옛 안의 3동의 하나인 화림동 계곡으로서 봉전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천의 암반위에 단동으로 건립되어 있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벽체(뒷벽)를 판재로 구성한 판방을 1칸 두고 있는데, 각주로 네 귀퉁이를 받치고 대청과 방 영역을 머름을 두어 구분하고 있다. 방 상부는 간단하게 인방재를 건너고 판재로 막아 천정을 만들었다. 현재 3면에 낸 문은 모두 없는 상태이다. 마루에는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원래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으로 함양군에서 원형복구를 추진 중에 있다. 

기둥도 천연의 암반위에 조성하였으므로 굴곡이 심한 암반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주초를 쓴 기둥도 있고 쓰지 않은 기둥도 있다. 

가구는 5량 구조로 대들보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보를 받도록 하였고 종보 위에는 종도리 장혀가 바로 올려지도록 구성했으며, 좌·우측면에서는 충량을 보내 대들보 위에 얹었는데 충량의 머리 부분은 가공 없이 직절(直切)하였다.

◇선비문화탐방로=함양은 선비 마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채 세워져 있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거나 한양길에 잠시 머물러 주먹밥을 먹던 곳이다. 화림동 계곡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60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으로 예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아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 8개의 못과 8개 정자)’으로 불렸다. 

현재 농월정터-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나무다리로 이은 6.2㎞ ‘선비문화탐방로’(2006년 말 완공)에선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다리를 걷다 정자가 보이면 잠시 쉰다. 정자 앞 크고 납작한 너럭바위가 작은 들판처럼 펼쳐져 있다. 바위 이름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달이 비치는 바위 못’이란 뜻의 월연암(月淵岩)과 ‘해를 덮을 만큼 큰 바위’인 차일암(遮日岩)이 풍광을 아우른다.

바위 위 물살이 움푹 파 놓은 웅덩이들에 물이 들어차 잔잔한 얼룩무늬를 이룬 모양이 신비롭다. 이곳에 막걸리를 쏟아 붓고, 꽃잎이나 솔잎을 띄워 바가지로 퍼 마시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진정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량이다. 

이 계곡은 옛 선비들에게 술 한 잔, 노래 한 가락 읊는 정자 명소였나 보다. 거연정 영귀정 군자정 동호정 경모정 람천정 농월정…. 약 6.2㎞ 길이의 선비문화탐방로 지도엔 옛사람들이 놀던 정자가 7개나 그려져 있다.

거연정 휴게소에서 계곡따라 농월정에 이르는 길은 잘 정비된 탐방로 덕분에 걷기 편하다. 나무데크가 잠시 끊어지면 벼가 넘실대는 논길이 이어진다. 허벅지 높이만큼 자란 벼 위로 부는 바람은 이리 오라며 손짓하는 듯 생기가 넘친다.

탐방로 마지막 지점인 농월정은 조선 중기학자 지족당(知足堂) 박명부가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한 부당함을 지목하다 고향 함양으로 유배 왔을 때 지은 정자다. 바로 앞 바위에 새겨진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之所)’란 글자는 ‘지족당 선생이 지팡이 짚고 놀던 곳’이란 뜻이다.

농월정을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리면 선조들이 느끼던 풍류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읊조렸던 시 한 구절이 떠오르는 듯하며 이 무더위도 잊게 된다. 마음속에 불어오는 행복한 바람이 힘찬 내일을 준비 해 줄 것이다.

화림동 계곡은 전국 어디서 오든 대진 고속도로나 88고속도로를 이용해 지곡 나들목에서 내려 국도를 타면 10여분이면 도착한다.

nosa@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