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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와 정자의 고장’ 함양에서 함께한 풍류체험

조회 : 1,471 다볕지기
‘선비와 정자의 고장’ 함양에서 함께한 풍류체험풍류기행 ‘자유행복학교’ _ <15> 고운 최치원 기행기 <下>
독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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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9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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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치원 선생의 고향 함양은 아름다운 계곡과 정자가 많아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독서신문] 현재 상림에는 함화루, 사운정 등 아름다운 정자와 만세기념비, 척화비, 역대군수 현감선정비석과 역사인물공원, 이은리 석불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상림 숲속 길을 접어든지 얼마 안 되어 함화루(咸化樓)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우리 앞을 막아선다. 함화루는 경남유형문화재 제258호로 조선시대 함양군의 읍성 남문이었던 것을 1932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한다. 본래의 명칭은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는 뜻으로 망악루(望岳樓)라 하였으나 이곳으로 옮져 지으면서 함화루로 고쳤다고 한다. 

사운정(思雲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 얹힌 단촐한 모습인데 1906년에 박정규와 김득창 등 함양 지역 유림들이 최치원을 추모하며 사모하는 뜻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모현정(慕賢亭)이라 했다가 나중에 사운정(思雲亭)으로 이름을 고쳤으며 상림 깊숙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어 시원하면서도 운치가 있었다. 우리는 사운정에 올라 시원한 숲속 공기를 들이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사운정을 지나 좀 더 걸어 올라가니 역사인물공원이 나온다. 역사인물공원에는 지난 천년 동안 함양을 대표하는 인물상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신라말의 대학자인 최치원, 조선 성리학의 대가 정여창, 실학의 대가 박지원, 조선 말 의병대장 문태서 등 10명의 인물상이 더위에도 꿋꿋하게 서서 우리를 맞는다. 함양에 이런 유명한 분들이 살았다고 하니 함양이 선비의 고장인 것만은 확실하다.

점심은 오곡밥과 나물이 나오는 한정식집에서 했다. 시원한 함양 막걸리를 곁들인 식사는 정말 꿀맛이었다. 여기저기서 추가 주문이 이어진다. 한껏 배를 채운 우리는 다시 오후 일정인 함양 정자 탐방에 나섰다. 차를 타고 20여분 서울 방향으로 올라가니 함양군 서하면에 있는 화림동 계곡이 나왔다.
 
 



덕유산 자락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화림동 계곡에는 예로부터 명소마다 멋진 8정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함양을 ‘선비와 정자의 고장’이라고 부르며, 지금도 시인묵객들이 자주 찾는다. 지금은 8정자 중에서 거연정, 군자정, 동호정만 남아있다. 8정자중 규모가 가장 컸던 농월정은 몇년전 화재로 소실된 후 아직 복구하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는 군자정에서 가까운 삼강정(三綱亭)에 올라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풍류체험을 하기로 했다. 삼강정에 올라 빙 둘러앉은 후 초암의 진행에 따라 먼저 삼행시 및 애송시 발표시간을 가졌다. 필자와 백천 선생, 그리고 처음 참석하신 석정 오진환님, 주장환님, 김승진님, 또한 카메라 담당 교수 은봉 선생이 연이어 삼행시와 애송시를 정자 분위기에 맞춰 한수씩 읊는다.

삼행시 발표를 마치고 남강 선생의 단전호흡 실습이 이어졌다. 지난번 단양 풍류기행 때 선보였던 석문호흡법을 남강 선생의 지도에 따라 각자 따라해본다. 시원한 정자에 편안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신을 집중한 후 명상에 잠긴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내안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긴 호흡을 해본다. 10여분 동안의 석문호흡이 끝나자 이번에는 오늘 처음 오신 삐에로님이 기타를 들고 앉는다. 우리는 삐에로님의 기타 연주에 맞춰 다함께 노래를 불렀다. 지금까지 풍류기행에서 기타를 연주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번에는 김승진님이 중저음 음색으로 ‘오! 솔레미오’를 멋드러지게 부르니 풍류가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 초암의 단소 연주를 끝으로 오늘의 풍류체험이 끝났다. 널찍한 정자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오이를 안주삼아 막걸리 몇 잔을 들이키니 만사가 구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치원 선생은 만년에 합천 가야산의 해인사(海印寺)에 머물렀는데, 908년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를 쓸 때까지는 생존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즉 52세까지는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일설에는 95세까지 살았다거나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지만 확실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그러나 고운 선생의 생몰연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으며 어떻게 살았는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의 삶과 사상은 일천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던 ‘현묘지도(玄妙之道)’, 즉 풍류가 우리 자유행복학교 풍류기행을 통해 다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최치원 풍류기행은 필자에게 ‘풍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뜻깊은 기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윤진평 ‘자유행복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