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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화림계곡 예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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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림동계곡의 정자들

 

장계에서 함양으로 들어가자면 육십령고개를 넘어야 한다.

육십령고개는 남덕유산 아랫자락을 타고 넘는 길로 고갯마루에서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룬다. 육십령고개는 이름이 예순굽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녔지만 경사가 가파르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다. 장계마을에서 고갯길이 빤히 올려다보이는데 그 고갯길의 생김새는 산비탈을 느슨하게 타고 오르는 뱀의 형상을 그리고 있다. 어느만큼 고개를 올라 아래쪽 장계마을을 내려다보면 안온한 촌락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우리가 관념 속에서 그리는 살기좋고 인심좋은 옛마을의 전형이다. 아직도 우리의 향촌이 겉으로나마 저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항시 감사와 행복을 느끼며 한편으로는 불안의 감정이 일어나곤 한다.

 

육십령고개를 넘으면 우리는 이내 금천(錦川)계곡, 속칭 안의계곡을 곁에 두고 줄곧 비탈길을 내려가게 된다. 계곡의 천연스런 아름다움은 이찻길이 생기면서 반은 죽어버렸고,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가 곧바로 이 계곡을 타고 내리게끔 설계되어 있으니 그때 가면 지금의 이 풍광은 먼 옛날의 예기로 되고 말겠지만, 아직은 안의계곡의 수려한 자태가 저력을 발하고 있다.

덕유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흙모래를 다 쓸어내고 골격 큰 화강암바위를 넘으면서 곳곳에 못을 이루고 어쩌다 너럭바위를 만나면 미끄러지듯 흘러내려 아름다운 풍광을 곳곳에 빚어놓았다. 그 계곡이 절정을 이루는 곳을 화림동(化林洞)이라 하며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의 승경을 자랑해왔다.

 

지금 화림동의 여덟 정자를 다는 헤아리지 못하지만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湖亭), 농월정(弄月亭)이 계곡 양쪽으로 포진하여 아무런 예비지식 없이 무심히 가던 사람도 잠시나마 쉬어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준수한 정자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어느 경우든 정자의 모습은 감추어진 그윽한 곳이 아니라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듯한 자리에, 어찌 보면 나를 보라는 듯 우리를 정면으로 대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호남이 아닌 영남의 정자문화가 지닌 독특한 성격을 읽어보게 된다.

 

『영남누대지(嶺南樓臺誌』에 시린 영남의 누각과 정자는 책으로 한 권이 될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함양군지』에 소개된 정자와 누대는 근 150개소가 된다. 그 누대는 저마다 사대부의 풍류와 은일(隱逸)의 뜻이 서려 있다. 거연정은 중추부사를 지낸 전시숙(全時叔)이 소요하던 곳을 후손 전재학이 추모의 염으로 세웠고, 동호정은 동호 장만리(章萬里)의 후손이 역시 추모하여 세웠고, 군자정은 정여창(鄭汝昌)이 일찍이 찾은 곳이라고 해서 사인(士人) 전세걸(全世杰)이 세웠고, 농월정은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내고 임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가 노닐던 곳에 후손들이 세운 것이란다.

 

영남의 정자들이 이처럼 계곡과 강변의 경승지를 찾아 세운 것이 많다는 사실은, 호남의 정자들이 삶의 근거지에서 멀지 않은 곳, 일종의 전원 생활 현장에 세운 것이 많다는 것과 큰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놀이문화의 정자와 생활문화의 정자의 차이가 된다. 때문에 호남의 정자는 자연과 흔연히 일치하는 조화로움과 아늑함을 보여주는데, 영남의 정자는 자연을 지배하고 경영하는 모습을 띠고 있다.

 

올 봄, 건축가 민현식·승효상이 종합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 창립을 기념하는 정여창 고택 답사에 초청하여 함께 이 길을 가면서 나는 민현식씨로부터 아주 유익한 깨침을 받을 수 있었다. 영남의 정자들은 위치설정에서 다소 드라마틱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어요.

바로 그것이다. 극적인 효과. 거연정이 구름다리 너머 바위 위에 올라앉은 것도 그렇고, 농월정을 계곡 건너편 저쪽으로 바짝 밀어붙여 세운 것도 그렇다.

 

지금 화림동의 4대 정자는 모두 입장료 300원씩을 받고 있다. 나는 돈도 돈이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항시 그중에서 가장 스케일이 크고 준수하게 생긴 농월정에서만 탁족을 즐기고 나머지 정자들은 차창 밖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농월정은 월연암(月淵岩)이라고 부르는 방대한 너럭바위 전체를 조망하는 자리에 세워져 있다. 못에 비친 달을 정자에서 희롱한다는 뜻의 이름이다. 주변의 승경은 자못 호쾌하고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살은 제법 빠르며 그 소리 또한 시원스럽다. 여름철 물이 깊어지면 바지를 걷어붙여도 정자 쪽으로 건너가지 못한다. 가을 단풍이 계곡물에 잠기며 오색이 어른거릴 때도 멋있지만 한겨울 얼음장 위로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을 때는 여지없는 한폭의 수묵 산수화로 된다.

 

월연암 곳곳에는 바위가 움푹한 웅덩이를 이룬 곳이 많다. 영남대 한문 교육과의 김혈조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이곳에 답사할 때면 안의마을 양조장에서 막걸리 한 말을 받아다 여기에 쏟아붓고는 봄이면 진달래 꽃잎을, 가을이면 들국화 꽃잎이나 솔잎을 띄워놓고 한 바가지씩 퍼서 마시게 하며 놀이판을 벌인단다.

 

농월정 정자는 이층누각에 바람막이 작은 방을 가운데 두고 삼면으로 난간을 돌린 제법한 규모이다. 입장료를 받건만 관리가 부실하여 신 벗고 오르지 못하게끔 되었으나 탐승객마다 신을 신고 오르는 바람에 점점 남루하고 볼품없는 몰골로 되고 말았다. 그러나 누마루에서 오른쪽 바위를 내려다보면 웅혼하고 유려한 글씨체로 ‘지족당이 지팡이 짚고 신을 끌던 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는 글씨를 깊게 새겨 놓아 이 농월정의 뜻을 새삼 새겨보게 된다. ‘장구’란 지팡이와 신을 뜻하는 것으로 산보를 의미한다. 풀이하자면 지족당이 산보하던 곳으로 된다. 농월정 난간에 기대어 화림동 계류소리를 들으며 한가한 시간을 가질 때면, 언젠가 나도 보름달 뜰 때 여기에 올라 달을 희롱하며 놀아보리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내겐 그런 한가한 시간이 오지도 않았고, 올 것 같지도 않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 2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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